차(茶)를 마시며 공파 정 주호
세상 어느 것으로도
따뜻해지지 않는 날,
내 그림자와 마주 앉아
한잔의 차를 마신다.
살아서는 한줌 흙이었을
가난한 찻잔 속으로 스며드는
먼지같은 평화,
그 한모금의 온기로
사람들의 거리에서 부서지고 헝클어진 마음이
제자리를 찾아 돌아오고
아,저절로 그리워 지는 눈물이여.
너와 만날때면
말이란 비그친 오후의 우산처럼
다만 거추장스럽고
온몸이 데일듯한 뜨거움을 견뎌낸,
그래서 더욱 향기로운 너를
내 안에 한모금씩 적셔본다.
창너머로 잿빛하늘이
먼나라 사람들의 말소리처럼
낯설게 소근거리는 오후의 한적함,
사랑도, 삶도 어쩌면
이 한잔의 차보다
더 부질없는 것은 아닐까,